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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홍진호 첼리스트와 오늘 주제가 되는 지구의 끝 온실, 그리고 이 책을 쓰신 김초엽 작가님의 팬입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좋아하는 책을 주제로 삼아 공연을 한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공연이 열린다는 현수막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예매했습니다. 바흐와 폴링 슬로울리가 함께 연주되는 공연에 갈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저는 정말 이 공연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후반부에 갈 수록 기분이 좋지 않아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왜 공연이 끝난 뒤 이렇게 화가 난 채로 공연장에서 나와야 했을까요? 집에 오는 내내 고민했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지금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이 공연의 제목은 진호의 '책방'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책'방 입니다. 좋은 책을 추천하고, 그 책에 어울리는 곡들을 소개하고, 결국 관람자에게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혹은 이미 읽은 독자와 감상을 나누는 공연입니다. 책방은 무릇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공연은 음악은 아름다웠을지언정 책방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의 끝 온실은 이 공연에 이용당했습니다. 공연자 중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홍진호 첼리스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어째서 그 책을 추천하는 자리에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선곡한 노래를 들어야하나요? 유튜브로 그 책의 요약본을 보고 온, 책을 들춰보지도 않은 것 같은 사람이 선곡한 노래를 들어야하나요? 공연 후반부에는 거의 책에 대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습니다. 그 '책'에 대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공연이 끝나고 나왔을 때, 저는 그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을 정도입니다.
홍진호 첼리스트의 기획은 순수하게 좋은 의도였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이 공연은 그 좋은 의도를 퇴색시키는 공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티켓을 팔려면 당연히 인지도 있고 좋은 아티스트를 불러야 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연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스트가 공연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제목, 이름을 가져다 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책임감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 공연은 '지구의 끝 온실'에 대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게스트들은 연주만 하고, 선곡은 홍진호 첼리스트가 하고, 다니엘 린데만님과는 이 책에 대해 질의하고 대담하는 형태로 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온 저는 이제 슬픕니다. 좋은 의도를 가진 공연의 아름다운 음악들을 들은 뒤 화를 내야했기 때문에 슬픕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고 화를 내야했기 때문에 슬픕니다. 이런 공연들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지역시민들에게 문화 공연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한 의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감상을 남깁니다. 부디 진호의 책방이 다시 고양시에 서게 된다면, 고양시가 아닌 다른 어떤 지역에라도 공연 된다면, 더 발전된 모습이길 바랍니다. 책의 내용을 음악으로 전하기 위해서, 더욱 책임감 있는 공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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