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한러수교20주년기념 마린스키발레단 내한공연 - 지젤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한러수교20주년기념 마린스키발레단 내한공연 - 지젤 >
무용은 아무런 대사가 없이 무용수의 움직임과 이미지로 객석과 예술적 감동과 의미를 교감하는 공연예술이다. 그리고 무용만큼 각 국가 고유의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잘 간직하는 예술도 없다. 각 국의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벌써 그 나라의 특성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새로운 국가와 외교적 관계를 맺는 등의 중요한 순간에는 각국 고유의 무용단을 먼저 상대국에 보낸다.
무용이 각 국가 교류의 최선봉에 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러시아의 마린스키발레단이 된다. 마린스키발레단은 이미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수교를 맺던 바로 그 다음 해인 지난 1991년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하여 공연을 하였고, 이번 2010년에는 한러수교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우리나라를 찾은 것이다.
어쨌든 하나 확실한 것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의 키로프발레단이 한국과 러시아의 외교 수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공연을 하러 왔다는 것은, 최소한 문화정치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러시아가 그만큼 우리 대한민국을 중요시하고, 우리나라와 러시아와 정치, 외교, 문화, 등 각 부문에서 그 관계가 최고라는 것이 된다.
한러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마린스키발레단 내한공연 중 첫 번째 공연이었던 < 지젤 > 공연이 지난 11월 9일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있었다. 공연을 보기 전 객석에서 평자는 우선 어떻게 이렇게 큰 공연이 예술의 전당 등, 서울의 공연장에서 열리지 않고 이곳 고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아람극장에서 열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대답은 아직도 정확히 확인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부분도 하나 확실한 것은, 이번 지방의 고양문화재단이 올해 우리나라의 최고의 공연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와 직접 접촉했다고 하는데, 정말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단체를 국가적인 의미까지 가미하며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공연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사실 평자는 작년(2009년)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을 직접 방문하여 약 10일 동안 백야축제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마린스키극장에서 ‘지젤’을 공연하지는 않았다. 막이 오르고 세계 최고의 발레단의 ‘지젤’ 공연이 시작된다. 우선 지젤과 어머니가 함께 사는 오두막집과 헛간 등이 있는 무대장치가 깊고 입체적이다.
이런 부분은 우리나라 발레 관계자들과 발레단도 참고했으면 한다. 지젤을 짝사랑하는 시골 청년 힐라리온이 들어서고 지젤의 방 창가에 꽃다발을 꽂고 사라진다. 다시 지젤의 연인 알브레히트(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가 나타나 지젤(빅토리아 테레쉬키나)과 함께 꽃점을 보고, 함께 행복한 춤을 춘다. 이때 16명의 동네처녀들 나타나 지젤 알브레히트 등과 함께 아름답고 즐거운 군무를 이룬다.
어머니가 지젤을 데리고 들어가고, 다시 사냥을 마친 귀족들이 돌아온다. 12쌍의 동네 처녀 총각들이 품위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고, 페전트파드되가 고풍 넘치게 이루어진다. 30여명의 남녀 군무들이 화려한 군무를 풍요롭게 이루고 난 다음, 지젤과 알브레이트가 포옹을 하려고 할 때, 힐라리온이 알브레히트가 귀족 신분임을 밝힐 수 있는 칼을 들고 나온다.
모든 것이 명쾌하기만 하다. 다시 귀족들이 나타나고 알브레히트가 자신의 귀족 약혼녀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자 지젤은 절망한다. 그리고 지젤은 어머니 품에서 죽어 가고, 큰 박수 소리 속에서 1막의 막이 내린다. 마린스키발레단은 ‘지젤’ 1막 공연에서 전통의 향기가 가득 묻어 있는 풍요로운 발레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런 대사도 없는 발레 공연이었지만, 그 어느 예술 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이야기를 명쾌하게 객석에 던지고 있었다. 2막은 십자가가 있는 지젤의 무덤가 숲 속이다. 꽃을 든 힐라리온이 무덤가에 나타났다 황망하게 사라진다. 윌리들 나타나고 숨 막히는 백색 군무를 이룬다. 아라베스크 룰루베의 24명의 세계 최고의 윌리들이 무서운 교차 움직임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객석의 큰 박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평자 개인 욕심으로는 이런 장면에서는 박수소리를 내지 말고 그냥 그 이미지에 빨려 들어갔으면 한다. 다시 알브레히트와 지젤이 만난다. 함께 객석의 가슴을 뛰게 하는 2인무를 이룬다, 24명의 윌리 군무가 이루는 라인 그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 군무들이 좌우에 도열한 가운데 알브레히트의 부축을 받는 지젤이 하늘을 떠다닌다.
다시 알브레히트가 표현력 있으면서도 고귀한 독무를 이루다 쓰러진다. 미르타의 지시로 다시 일어서서 힘껏 움직이다가, 다시 지쳐서 쓰러진다. 또 다시 일어서서 허공을 좌우로 가르는 움직임을 이루다 쓰러졌을 때, 멀리 붉은 아침햇살이 숲을 관통해 비추기 시작하고, 이제 윌리들이 돌아가야 한다. 이별을 인정하지 않는 알브레히트가 지젤을 거의 수평으로 들고 움직이다 무대 중앙에 내린다.
그러나 지젤이 두 팔을 사선으로 이루고 가볍게 흔든 다음 무덤 쪽으로 사라지고, 무대 위의 알브레히트와 함께 객석의 모든 관객들이 깊은 슬픔 속에 빠져든다. 매혹적인 장면들이 끝나자, 객석 전체에는 깊은 감동의 전율이 흐르고 있으며 큰 박수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고양 아람누리극장에서는 올해 우리나라 공연장에서 최고의 클래식발레 공연이 있었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
송*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