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대화동 - 용구재 이무기 이야기
논농사로 유명한 대화동 내촌마을에는 부근 마을에도 널리 알려진 큰 웅덩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백암(白岩)웅덩이라고 불렀는데, 웅덩이 옆에 크고 흰 바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암웅덩이에는 오래전부터 이상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전설은 수백 년 묵은 괴물이 하나 살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아무도 그 괴물의 정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백암웅덩이에 살고 있는 괴물은 다름 아닌 두 마리의 이무기였습니다. 웅덩이 속 30미터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기도를 시작한 지 천 년을 3일 앞두고 있었습니다.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천 년이 되기 바로 전날, 이무기들은 3일 전부터 바깥출입을 삼가고 승천을 대비해 몸을 깨끗이 닦고 조용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편 대화동 마을의 촌로인 김 노인은 이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웬 신령이 나타나더니 백암웅덩이에 용이 되려는 이무기가 두 마리 살고 있는데 그 이무기가 승천하는 날이 내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노인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꿈속에서 신령이 한 말을 전하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동네의 말썽꾸러기 철구는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임신한 형수에게 새우젓을 잔뜩 먹인 것인데, 짜디 짠 새우젓을 너무 많이 먹은 형수는 밤새 물을 들이켜는 바람에 잠도 못 자고 오줌이 마려워 변소로 달려갔습니다.
그 무렵 백암웅덩이의 이무기들은 용이 되기 위해 승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구름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이 두 마리의 이무기는 서서히 웅덩이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로 높이 오를 수록 꼬리부터 용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머리 부분 아래까지 용의 비늘과 발이 생겼고 몸의 반은 이미 구름을 뚫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아래 대화동 마을을 얼핏 내려다보던 두 이무기는 웬 임신한 여자가 천정이 뚫린 변소 안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로 통하는 문이 닫히더니 하늘이 노랗게 물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하늘로 오르던 이무기들은 온 몸의 힘이 모두 빠지더니 철퍼덕하고 백암웅덩이 속으로 다시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습니다.
천년동안 기다려오던 그 순간이 허사로 돌아가 버리자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난 이무기들은 그날부터 웅덩이 밖으로 나와 마을의 논과 밭을 모두 망치고 닥치는 대로 물건들은 부수었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지자 마을사람들은 이무기에게 용서를 비는 제사를 올리기로 하고 날짜를 정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무기들도 정성이 갸륵해 한참을 잠잠하게 지내다가 1년에 딱 한번 동짓달 초하루에만 웅덩이에서 나와 횡포를 부리고는 하였습니다. 이날이면 마을사람들은 용구재라는 고개에 올라 이무기에게 용서를 빌고 큰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용구재 이무기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