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행주동 - 행주 웅어, 금원과 란사의 슬픈사랑 이야기
300년 전, 행주 나루터 앞 돌빵구지 마을에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금원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금원은 한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다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행주나루 부근 한강에는 조선팔도에서 유명한 웅어라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어찌나 귀한지 특별히 임금님만 드실 수 있도록 국법으로 정해 놓을 정도였습니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돌빵구지 동굴 석빙고에 갇혀 얼어 죽는 끔찍한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금원이 열여섯 살 되던 해, 한양에 사는 정 판서라는 사람이 행주나루터 근처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셋째 딸 란사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늘 잔병치레를 하여 의원이 행주나루로 요양을 하면 회복할 것이라는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덕양산으로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던 금원이 분홍 진달래꽃을 한 아름 안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는 란사와 마주치게 되었고 이내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어 찬바람이 불자 허약한 란사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고 바깥 출입조차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금원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딱한 연분 이야기는 고봉산 만경사의 주지스님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금원을 불쌍히 여긴 주지스님이 어느 날 찾아와 란사의 몸을 낫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웅어를 잡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금원은 약수로 깨끗이 몸을 닦고 한강 신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노를 저어 나갔습니다. 강 가운데는 물결이 잔잔했고 주위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고요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잔잔한 물결 위로 한 마리의 커다란 웅어가 튀어 오르더니 금원의 배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쉽게 웅어를 잡은 금원은 웅어의 입속에 물려있는 웬 쪽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금원에게, 예쁜 정 판서의 딸 란사를 구하게 되었으나 너는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웅어를 잡았으니 대신 스스로 석빙고에 들어가는 벌을 받아야 해.'
그러나 사랑하는 란사만을 생각하는 금원이기에 벌 따위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웅어를 정 판서에게 갖다 주고 돌아온 금원은 다음날 스스로 석빙고를 찾아가 큰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몸을 회복한 란사는 자신을 살린 금원을 찾아갔지만, 금원이 이미 석빙고 속에 얼음이 되었다는 소식만 들려왔습니다. 란사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슬픔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얼마 후 란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 돌빵구지 석빙고 속에 또 하나의 얼음이 생겨났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해질 무렵 금원과 란사로 변한 두 마리의 웅어가 무지개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