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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캔버스에 채우다, 이선호│옆집예술가

  • 2021.05.21
  • 조회수16174

건축을 캔버스에 채우다, 이선호

 
 이선호 작가의 작업실 안에 들어서는 순간, 시멘트와 물감냄새가 우리를 맞이한다. 작업실을 가득 채우는 이 냄새는 작가의 서사를 우리에게 넌지시 건내주는 듯 하다. 켜켜이 쌓여있는 작품들, 어지러히 놓여있는 화구들은 이선호 작가가 작업에 대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선호 작가는 오랜시간 건축가로서 임하다, 회화작가로 전향하였다. 하루하루를 허투르게 보내지 않기 위해 그는 작업실을 매일매일 출근한다. 건축가로서 숨가쁜 현장을 출근하며 도면을 그리다, 자신의 내면을 폭발하듯 그려내는 느낌은 어떨까?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선호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어디서 영감을 얻고 있을까.

 

 







장소를 그리다
; 고향과 건축이 작업의 영감이 되기까지


“제가 그리는 작업은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풍경, 또 하나는 오랜 기간 몸 담아왔던 건축입니다. 풍경작업은 제가 시골출신이라 그렇습니다(웃음). 태백산 자락에서 자랐거든요.”






이선호 작가의 고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짝이는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라 온 고향, 태백산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고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캔버스에 가득 그리며, 자신만의 그리움을 표현한다. 그는 <고향>이라는 시리즈로 태백산 자락을 가까이, 멀리, 여러 시선과 방향으로 그려내었다.

“이른 봄 풍경을 참 좋아합니다. 꽃이 피기 전 앙상한 가지들이 그려내는 깊은 오지의 풍경 말이죠. 사실 이번 전시에서 <고향>시리즈를 꼭 전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장소가 주는 힘을 믿어요. 그 장소가 저에게 주는 영감과 특별함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건축인데요, 스위스의 유명한 건축가, 지오폰티는 ‘건축은 초연한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조용하지만 예술성이 있는 건축의 매력에서 많은 영감을 얻죠. 우리도 지나가며 잘생긴 건물은 자꾸 시선이 가고, 또 사진도 찍고 싶고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잘 조화된 건물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단순한 반복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건축에 관한 일을 하면서도 이걸 어떻게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잠재되어 있었죠. 건축의 매력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늘 건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운전하고 가면서도 좋은 건물이 있으면 잠시 멈추고 찍어가고, 머릿속에 넣고... 늘 주의 깊게 보게됩니다. 풍경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전 나들이를 갈 때 카메라를 항상 옆에 놓습니다. 정말 놓치기 싫은 풍경들이 있거든요.”





치밀하게 몰입하다
; 작업에 들어가기 전



그렇다면 이선호작가는 풍경과 건축을 그려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할까. 풍경이 선사하는 노스텔지어를 그려낸다는 것, 그리고 3차원의 웅장한 건물을 평면회화에 담아낸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더욱 소중한 사람에게는.

“풍경은 제가 가장 잘 그리고 싶은 충동이 있는데요. 특히 이맘때의 산을 좋아합니다. 산을 바라볼 때 감정을 그대로 살려서 그리는, 느낌이 아주 좋은 날이 있어요. 그런 때에는 식사도 거를 정도로 퍽 몰입하게 되는데, 그 때 좋은 작품이 나오게 됩니다. 건축은 치밀한 계산을 하며 작업을 합니다. 보시다시피 어떤 작품은 1cm간격을 유지할 때도 있고, 1.5cm 간격을 유지할 때가 있어요. 에스키스를 많이하고, 포토샵 작업을 거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요. 스케치를 정말 많이 하는데, 스케치만 한 달 해도 떠오르질 않는 때가 있어요.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변화되어가는 작업이 느껴지는 것이야말로 진짜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제 작업은 건축에 쓰이는 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잘못되면 지워낼 수도 없어요. 유화나 이런 작업은 미적 터치를 해서 고치기도 하는데, 제 작업은 계획의 틀이 잡히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해요. 색깔 정도는 바꿀 수 있지만... 그래서 정말 준비를 치밀하게 하는 편입니다.”




대상의 본질을 찾아
; 작품을 표현하는 방법과 소재 선택의 이유

“건축을 그릴 때는, 최대한 건축물에 쓰여지는 재료를 쓰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목재, 시멘트 효과가 나는 모래 성질을 사용하고, 철공소에 가서 철판 제단을 다양하게 하기도 하구요. 또 고철 취급하는 고물상에 가서 많이 구입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곳에 가면 눈치가 좀 보여요(웃음). 큰 걸 사오는 것도 아니고 작은 철판 쪼가리를 주워 오는데 그게 돈이 얼마나 되겠어요. 괜히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가, 왔다갔다 하시고(웃음). 그래도 그 분들과 친해지면 도움도 받고 그럽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눈에 보이는게 탐이 나요. 언젠가는 ‘아, 저게 있으면 저걸 중심으로 멋있는 작업이 나올텐데’라고 생각하면서 그 소재에 욕심이 생기고 구입을 합니다. 또 작업을 하다가 영감이 오는 재료가 생각나면서 찾으러 가는 경우도 있지요. 시각적으로 지루한 것에서 탈피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 특별히, 많이 사용하는 재료가 있을까?

“저는 모래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젤 미디움에 섞어 모델링을 만듭니다. 처음에 스케치로 라인을 만들어, 일정한 간격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요. 전시되어 있는 큰 작품도 1cm 간격으로 제작되었고요. 일종의 직업병이기도 한데, 규칙적으로 되어야 마음이 편해요. 그게 벗어나지지가 않네요. 내 마음은 큰 붓으로 막 휘저어 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틀림없이 ‘하면 안될거다’라는 생각을 해요. 어마어마한 대가들이 계시는데, 내가 하던 (지금의)이거나마 정직하게, 더 좋은 작업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임합니다.”

 

하늘이 넓은 고양시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


“고양시는 제 2의 고향이죠. 제가 93년도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고 첫 번째로 입주했습니다. 27~8년 정도 살았어요. 작업하기가 참 좋은 곳입니다.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여기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옛 풍경이 참 좋지 않습니까.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곳이 고양시라 생각해요. 그 중 가장 좋은 것은 일산은 하늘이 넓어요. 여기 살면서 그걸 못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늦은 오후, 서울에서 들어올 때의 노을이 말이죠. 기가 막혀요. 자유로를 타고 일산으로 들어오면, 거대한 노을 캠퍼스를 뚫고 자유로가 확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마음도 트이지요. 서울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는 기분이에요. 일산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매력적인 도시고요. 또 예술활동을 하면서, 예술관계자분들과 원활한 소통이 잘 된다고 봅니다. 저는 참 좋아요. 전시의 기회를 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건축가 이선호에서, 작가 이선호로
; 변곡점을 말하다


“건축은 참 매력이 있으면서도. 막상 이렇게 접해서 하는 것은 전쟁 같습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법규, 공간 구조에 대한 생각, 클라이언트... 복합적인 것들에서 탈피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죠. 원래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업에 몰두하고, 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나의 삶의 의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점점 줄여나갔어요. 마지막으로 원했던 것은 아뜰리에, 스튜디오를 지키는 것이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거죠.”

- 그렇다면 조금은 자유로운 삶이 되었을까?

“저는 작업실 나오는 것도, 회사 운영하듯 시간을 철저히 지킵니다. 9시에는 틀림없이 나오고, 또 야근도 하고(웃음). 어떨 때는 진이 빠지도록 일하다가 들어가는데,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느슨해지거든요. 너무 자유롭다보니까. 그래서 긴장을 하려고 노력하는거죠. 리듬이 있잖아요. 리듬이 깨지면 다음날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됩니다. (작업의)리듬을 이어가야 해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에요. 제 작품 중 큰 것들은 단숨에 나오듯이 해야지, 저걸 힘드니까 놔두고 내일 아침에 한다..? 이러면 완전히 다른 작업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 리듬을 살리기 위해 식사도 거르면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것은, 작품에 소요되는 시간 역시 만만치 않아서 일까.

“저는 작업이 좀 오래걸립니다. 저 작품 정도면 일주일 가까이. 건조가 되어야 하고, 또 덧칠해야 하고.. 이런 시간까지 다 하면 그래요. 마르고 긁어내고 또 칠하고... 그러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다른 작품을 가리키며) 이거는 사실 좀 쉬운 작업이었어요. 보시다시피 베이스 화이트 겉에 검정색으로 칠해 나간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작업이 반복되었다고 보면 되겠죠. 저것은 입히고 물로 씻어내고 거르고.. 과정이 많아서, 한 5일은 걸렸을거에요. 이거는 완전히 감각적이에요. 얼룩말 무늬를 붓으로 그냥 그려내는겁니다.”





건축의 유한, 회화의 무한
; 건축과 회화의 닮은 점과 닮지 않은 점을 말하다

“미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닮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닮지 않은 점은, 건축은 복잡하고 생각할 것이 너무 많고, 구조적으로나 여러 가지 수반되는 것들이 복합적인데, 건축은 어느 시점이 되면 준공이 되면서 끝이 납니다. 그런데 회화는 해보니까 끝도 없고, 막막해요(웃음). 고뇌의 깊이가...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겠고, 막막합니다. 답답합니다(웃음).
 아무래도 건축 일은 힘들다고 했잖아요, 1cm의 치밀한 간격, 그런게 어렵다기보다도 제 자신 뿐만이 아닌, 다른 외적인 것들에 대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작업은 ‘내’작업이기 때문에, 내가 참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제 그림 속에는 초가집, 빌딩 같은 건물이 좀 들어가는데요. 조그만 건물이 하나라도 들어가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건축도 놓치기 싫은거고, 회화도 놓치기 싫은거고. 어정쩡하게 가고 있는거죠(웃음). 어쩔 때는 구멍 뚫린 창문이 건축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되는 것 같아 식상하게 느껴져요. 오히려 그냥 다 지워내고, 미니멀한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



건축을 아름답게, 그리고 친근하게 바라보길 바라며
;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

“관람하시는 분들이 건축을 미학적 관점에서 친근하게 바라보고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건축을 주제로 한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요, 하나는 원근법이 적용된 작업입니다. 선과 색으로만 표현을 해서,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고, 또 어떤 건축을 그렸구나 알 수 있을거에요.
또 하나는 회화의 본질이라는 입체 원근법을 배제한 평면작업이 있는데, <침묵>이라는 명제를 줬지요. 우리가 밀집되어있는 도시 공간에 살면서 누구나 사회적 관계에서 정신적인 소외감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마음의 잡다한 것을 비워내고, 잠시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작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리면서 많이 지워내고, 긁어내고 했어요. 디테일이 참 많은데요, 켜켜이 쌓여있고, 물로 긁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씌워도 보고...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음의 잡다한 것을 비워내는 거죠. 저 자신도 그렇습니다만은... 단순하게, 최대한 단순해 보이려고 앞으로도 노력할 겁니다.”

 


고양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옆집예술가>展 온라인전시와 인터뷰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선호 작가인터뷰 : https://youtu.be/UZLEnQWkink
온라인 전시 : https://youtu.be/v7PF-yq4NJk

 
 

 
​인터뷰│박유진(고양문화재단 교육전시팀), 이해리(고양문화재단 교육전시팀)
편 집│이해리(고양문화재단 교육전시팀)
영 상│이해리(고양문화재단 교육전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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