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고봉동 - 고봉산 고(高)씨와 심학산 심(沈)씨 이야기
세상의 모든 산이며 나무들이 처음 생겨나던 시절, 하늘에서는 두 개의 큰 산이 서로 먼저 땅으로 내려오기 위해 힘을 겨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봉산이라는 이름을, 다른 하나는 심학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었습니다. 두 산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로 명당자리를 살피던 중 덩치가 조금 더 큰 고봉산이 심학산을 밀어내고 자리 좋기로 소문난 지금의 고양시, 즉 벽제와 일산 사이에 먼저 내려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뒤따라 내려온 심학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고봉산 쪽에가 큰 소리로 방귀를 뀐 후 고봉산으로부터 서쪽으로 십 리 떨어진 파주시 교하 땅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 생겨날 때부터 자리 다툼을 하느라 서로 원수가 되어버린 고봉산과 심학산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양 쪽에 살고 있는 북한산의 백운봉이 오래간만에 고봉산에게 놀러 왔습니다. 백운봉은 설악산에 놀러 갔을 때 선물로 받은 더덕술을 가지고 와서 고봉산과 밤늦게까지 마셨습니다 심학산 욕을 하며 밤늦도록 술을 마신 고봉산은 몹시 갈증이 나서 한강 물을 정신 없이 들이켰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심학산 아랫마을에는 갑자기 큰 홍수가 나서 마을 사람들이 심학산 꼭대기로 짐이며 가축을 옮기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이르러서야 잠에서 깨어난 고봉산은 비로소 자기가 오줌을 쌌다는 사실을 알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심학산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갑자기 '쿵'하고 큰 바윗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고봉산의 머리 위로 무수한 바윗돌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자기 마을을 온통 오줌바다로 만들어버린 데 화가 난 심학산이 고함을 지르며 고봉산 쪽으로 돌팔매질을 한 것입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개성의 송악산이 한 가지 궁리를 냈습니다. 자신의 딸인 정발산과 오두산을 각각 고봉산과 심학산에게 시집을 보내 가정을 구리도록 하면 둘의 사이도 좋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고봉산은 색시로 맞아들인 정발산의 자상함에 이끌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심학산 역시 금세 오두산에게 정신을 빼앗겨 고봉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고봉산과 심학산은 싸움을 하지 않고 가정에만 충실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정발산과 오두산이 임신을 하자 고봉산과 심학산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 또 다시 서로 싸움을 벌일지 모르니 우리 자손들을 두 산 사이에 살게 하자." 그리하여 고봉산 밑에는 고(高)씨들이 자리를 잡았고, 심학산 밑에는 심(沈)씨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고봉산과 심학산은 다시는 싸움을 하지 않고 의좋게 살았습니다.